최근 채용포털 구인공고를 보면 대기업을 포함해 MBTI 결과를 제출하는 공고가 적지 않고, 심지어 친절하게도 무료 MBTI 검사 사이트까지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MBTI가 INFP이신 분' 'MBTI가 I 혹은 E이신 분' 'MBTI가 ENTJ, ESFJ이신 분들은 지원 불가' 등의 방식으로 특정 유형을 정하거나 배척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정도면 MBTI가 대단히 전문적인 검사 결과인 것으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어다. 1944년 미국 여류 작가 캐서린 브릭스와 딸 이저벨 마이어스가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바탕으로 개발한 자기 보고식 검사일 뿐이고, 검사자를 16가지 심리 유형 가운데 하나로 분류하는 것에 그친다.
기업들은 이를 구직자의 성향과 직무 적합성 등을 고려할 수단으로 수집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기업이 원하지 않은 MBTI 유형의 구직자는 당연히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가끔 MBTI를 이용한 채용 절차가 위법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채용 절차 공정화법 제4조의 3에서 예시한,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어서 위법이라 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법은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적이라 할 수 없는 MBTI 하나 때문에 원하는 기업에 지원하는 기회조차 박탈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누구도 이를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생각건대 기업이 MBTI를 자율적으로 채용에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MBTI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MBTI가 INFP이신 분' 'MBTI가 I 혹은 E이신 분' 'MBTI가 ENTJ, ESFJ이신 분들은 지원 불가' 등과 같이 극단적인 차별로 보이는 경우에 대해서는 국가적 계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채용 과정의 차별을 금하는 고용정책기본법 제7조 취지에 반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의 차별 행위의 금지 정신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직자 입장에서 MBTI보다 더한 깜깜이 채용이 있다. 그게 바로 인공지능(AI) 면접이다. AI 면접은 알고리즘에 의한 채용 절차로,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채용 비리를 줄일 수 있고, HR 담당자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채용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지만 구직자로부터 얼굴 표정, 목소리, 뇌파, 눈 깜박임, 눈동자 움직임, 발한, 언어 습관 등의 생체인식정보 또는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채용 가부를 일부 또는 전부 결정하는 자동화된 개인 결정을 하고 있음에도 구직자에 대한 법적 보호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직자 입장이 돼 보면 구직자는 수집되는 생체인식정보나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할 수 있고, AI 알고리즘에 대한 대략적 설명이라도 듣고 싶고, AI 면접 결과에 대하여 이의하고 싶을 수도 있으며, AI 알고리즘이 편향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알고 싶고, AI 면접 결과는 채용 결과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하고, AI 면접이 아니라 다른 방법의 면접을 선택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구직자 입장에서 이를 현실에 옮길 법적 수단은 아쉽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일리노이주는 이미 2019년에 인공지능면접법을 제정해 기업에 구직자로부터 AI 면접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게 하고, 나아가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직자 평가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유형의 특징을 설명하는 경위서를 구직자에게 제공할 의무를 부담시키는 방법 등으로 구직자를 보호하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2020년 2월에 채용 과정에서 자동화된 채용 도구 판매를 규제하는 조례안을 제정해 AI에 대해 매년 편향성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으며, AI가 그 평가에 활용하는 구직자의 특성과 자격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EU는 더 적극적이다. GDPR에 따르면 프로파일링 등 본인에 관한 법적 효력을 초래하거나 이와 유사하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동화된 처리에만 의존하는 결정의 경우 구직자는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구직자는 그 결과에 대하여 의견을 표명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기업은 알고리즘에 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2021년 4월 EU의 인공지능규칙안에 의하면 AI 시스템을 위험도에 따라 4단계로 구분하고 단계에 따라 법적 의무 또는 규제를 달리한다. AI 채용 시스템의 경우 2단계인 고위험 AI 시스템으로 예컨대 위험관리 시스템 구축, 데이터 고품질성 유지·관리, 기술문서 작성, 로그 기록 보관, 투명성 보장, 인간의 관리·감독, 사이버보안, 적합성 평가, 등록, 모니터링 시스템 구현 등 엄격한 규제가 구비된 전제 아래 허용된다.
각국의 입법례는 유형에 따라 AI 일반법에 의한 규제,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규제, AI 채용 관련 특별법령에 의한 규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그 어떠한 형식의 입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로 다가온 AI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바람직하게는 AI 현실에서도 AI보다는 구직자가 우선되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 작성, 전자신문(2022. 4. 19.)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