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블록체인 분산장부 기술로 탈중앙화를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으로 삼았다. 암호화폐의 변동은 익명의 각 노드(node) 사이의 자율적 합의 매커니즘을 통해서만 발생하며, 중앙은행 등의 특정기관이 그 변동을 임의로 결정할 수 없다.
이러한 암호화폐의 성격과 도입 취지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면도 있겠으나, 탈중앙화 및 익명적 성격 때문에 그간 암호화폐가 탈·불법행위의 수단으로 활용돼 온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같은 이유로 특정금융정보법이 지난해 3월 개정됐고, 이제 그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주된 목적은 종국적으로 암호화폐를 수단으로 하는 탈·불법행위들에 대한 감시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분석원 신고의무,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여지 있어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사업자를 정의하거나 ‘가상자산거래’를 ‘금융거래등’에 포함시키는 등 굵직한 개정내용이 많지만, 현재 가상자산사업을 영위하고 있거나 이제 영위하려는 자에게 가장 체감이 크고 목전에 다가와 있는 부분은 앞으로 가상자산사업자로 영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장은 제7조 제3항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 각호에 나열된 사유 중 대표적인 것은 정보보호 관리쳬게 인증(ISMS)를 획득하지 못하거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으로 금융거래를 하지 않는 경우다.
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신고가 불수리되는 경우에는 가상자산사업을 할 수 없으므로, 위 요건은 가상자산사업의 진입장벽으로서 작용한다. 진입장벽의 높이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단계라고 할 것이다.
화폐 자체가 아무리 합의 매커니즘으로 탈중앙화를 이뤘다고 하더라도, 그 사업을 소수의 선별된 자들만 영위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진정한 가치중립적인 탈중앙화가 이루어졌다고는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상자산사업 양성화 목적을 잊어선 안돼
가상자산사업을 양성화한다는 목적은 물론 건전한 것이나, 그 수단으로 사업의 정체성까지 상실시킨다면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진입장벽을 너무 낮게 두면 법 개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임은 물론이나, 너무 높게 둘 경우 시장 자체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이 법 초기 ISMS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의 구비를 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심심치 않게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ISMS와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의 구비요건은 은행 등 금융기관 수준의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한 일반 사업자들에게는 커다란 진입장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의견이다.
다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법 제7조 제3항 신고 불수리의 규정형식이 재량행위의 형식(신고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다)으로 규정돼 있다는 점이다. 만약 기속행위(신고를 수리하여서는 안 된다)의 형식으로 규정돼 있다면 ISMS를 갖추지 못하였거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구비하지 못한 자의 신고는 재고의 여지없이 불수리 될 것이나, 특정금융정보법은 큰 틀만을 정한 후 그 세부적 기준은 행정당국에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ISMS를 갖추지 못했거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을 구비하지 못했더라도 신고가 수리돼 가상자산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을 남겨둔 것이다. 정부가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정립할지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실무가 누적될수록 적정한 기준점이 도출될 것으로 믿지만, 개정법령 시행 초기 단계부터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날마다 급변해 가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우리 시장이 후발주자가 되도록 하는 일만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작성, 이데일리(2021. 2. 2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