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에 대한 입법 상황을 보면 가상자산에 대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이 제정돼 시행된 지 몇 개월이 됐고, 특금법은 가상자산 개념의 정의를 하고 가상자산사업자에 신고 의무까지 부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의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도 입법화, 시행 시기만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적인 면을 보더라도 1년 동안의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22조원을 초과하는 상황이며, 거래 인구도 약 600만명 정도이다. 법리적으로도 우리 대법원은 이미 3년 전부터 가상자산을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자산이라고 판시, 그 재산적 가치를 인정해 오고 있다. 회계적으로도 가상자산은 이미 정립돼 회계 처리하고 있다.
행정적인 면을 보더라도 국세청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올해 3월부터 국세·지방세에 대한 강제징수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국세징수법 개정안도 국회에 묶여 있다. 범죄자에 대한 가상자산 몰수 처분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런 입법·현실·법률·회계·행정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가상자산은 거래 실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산 가치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법적으로 제도화된 자산이라는 점에 대해 다들 공감할 것이며, 현실적으로 어떤 사람은 가상자산만으로 수억원·수십억원을 저장해 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러함에도 가상자산에 대한 민사적인 보전 처분이나 강제 집행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민사적 보전 처분이란 민사적인 채권을 근거로 해서 채무자에 대한 가상자산을 가압류하거나 가처분하는 절차, 민사적 강제집행이란 법원의 확정판결을 근거로 해서 채무자에 대한 가상자산을 압류하고 현금화해 관련 채권자들에게 배당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현재 실무적으로 통용되는 가압류 절차로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거래소에 대한 가상자산 반환청구권 또는 가상자산 출급청구권에 대해 가압류하는 것은 인정되고 있지만 채권자가 채무자의 거래소에 있는 자상자산 자체를 가압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상자산 반환청구권 또는 가상자산 출급청구권에 대한 가압류와 달리 가상자산 자체에 대한 강제집행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자체에 대한 강제 집행이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부에 공개적으로 기록된 가상자산이지만 이를 양도 또는 처분에 사용되는 개인키(또는 비밀키)는 오로지 채무자 머릿속에 있고, 채무자가 협조하지 않는 한 이를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채무자가 임의로 개인키를 알려주지 않는 한 가상자산 자체를 현금화할 방법이 없고, 현금화가 불가능하면 채권자가 이를 통해서 자신의 채권을 만족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러나 가상자산의 기술적인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가상자산에 대한 민사적인 보전 처분이나 강제 집행을 입법해야 할 현실적인 당위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이혼에 임박해서 양육비나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해 가상자산 형태로 재산을 보관하고 있거나 가상자산 형태로 바꿨을 때 그 어떤 채권 집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풍토가 만연해진다면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향후 대체불가토큰(NFT)·메타버스 등의 기술적 발전에 따라 재산적 가치가 있는 자산 형태는 훨씬 더 다양해질 수 있고, 앞으로 어떤 형태의 자산이 거래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상자산부터 제도화나 입법이 지체되기 시작하면 향후 거래될 다양한 자산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자산이라 해서 공식적인 채권 회피 수단이 될 수 없으며, 향후 생길 다양한 형태의 자산에 대해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무이고, 이런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통해 채권을 무력화하고 은닉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사법기관의 책무라 생각한다.
물론 가상자산의 기술적 특징을 규범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상존하지만 규범이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술적인 한계는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 작성, 전자신문(2021. 12. 14.)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