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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정보 상세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재판서 제안


자신이 승소한 민사판결문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한 국회의원의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위 국회의원이 여러 사람 앞에서 아나운서 집단을 모욕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피해자 아나운서들이 가해자인 위 국회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지만, 제1심 법원은 아나운서들의 청구를 기각하였고, 이에 위 국회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승소한 민사판결문을 그대로 올렸으며 그 바람에 판결문에 기재된 많은 원고들의 주소 등이 인터넷 공간에 그대로 노출된 사건이었다. 이렇게 아나운서의 직업을 가진 원고들의 주소가 인터넷 공간에 노출됨으로 인하여 아나운서들이 이후에 극성팬으로부터의 스토킹 등 2차 피해에 시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나아가 주민번호, 전화번호 등과 결합하면 보이스 피싱 등의 피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기에 위 국회의원은 아나운서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이 문제를 국회의원의 잘못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문제를 검토해보면 ‘재판서의 상세한 개인정보 기재’ 관행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 판결문을 작성한 민사법원은 「재판서 양식에 관한 예규」에 의하여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기재한 것이며, 실제로 위 예규 제9조를 살펴보면 당사자·피고인의 주민등록번호, 피고인의 직업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고, 제10조에 의하면 당사자·피고인의 주소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오히려 스토킹, 피싱 등의 범행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으며, 사생활 보호·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 부여의 헌법적 가치나 개인정보의 최소한의 수집·동의 없는 공개 금지 등의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기에, 이제는 판결문 기재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변화의 당위성을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판서에 기재하는 주민등록번호(이하 ‘연령’ 포함), 직업, 주소가 실무상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사재판 등을 제외하고는, 기판력의 범위 결정, 집행절차나 다른 후속절차를 위하여 이러한 개인정보 기재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나아가 굳이 재판서에 기재하지 않더라도 필요하다면 사후적으로 덧붙이는 방법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강제집행을 위하여 채무자의 주소가 필요하면 집행문 부여시 주소를 기재해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재판서 자체에 주민등록번호, 직업, 주소의 개인정보를 굳이 자세하게 적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둘째, 디지털 시대를 지나 스마트 시대가 도래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예전과 달리 전자문서화된 판결문이 그 공간을 통하여 순식간에 전파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인터넷 공간에 판결문을 올릴 경우 또는 누군가 고의로 판결문을 SNS 공간에 올릴 경우, 거기에 적힌 개인정보의 확산만으로도 기본권의 침해가 될 것이며, 나아가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두에 언급한 국회의원은 법률가이지만 판결문의 개인정보를 지우지 않고 인터넷 공간에 올려서 더 문제가 되었다. 하물며 비법률가들이 그로 인한 문제점을 인식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 없이 판결문을 인터넷 공간에 올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특히 형사판결문의 경우에는 인터넷 게시 자체로 명예훼손적 성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판결문 자체에 미리 개인정보에 대한 엄격한 보호조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재판서 양식에 관한 예규」 및 재판서에 개인정보를 자세히 기재하는 관행은 공동선이라 할 수 있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 개인정보에 대하여 정보의 주체는 자신에 관한 정보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바, 이를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라 한다. 대법원은 헌법 제10조의 인격권 및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한 내용으로서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다루고 있다(대법원 1998. 7. 24. 선고 96다42789 판결 참조). 즉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헌법적 가치로서 재판서 작성의 경우에도 반드시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사항인 것이다. 재판서에 적힌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데도 그 의사와는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있으며, 특히 인터넷 공간이 가세된 경우 그 노출 및 기본권 침해의 정도는 가공할 만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2006년도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러한 관행이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며 대법원에 시정을 권고한 적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개인정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넷째, 「재판서 양식에 관한 예규」는 2011년 9월 30일부터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개인정보호법은 개인정보의 최소한의 수집원칙 그리고 원하지 않는 개인정보의 공개금지원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위 법의 취지를 고려하건대 위 예규에 따른 당사자·피고인의 개인정보 기재는 최대한 자제되어야 할 것이며 원하지 않는 개인정보 공개 역시 충분히 제한되어야 할 것이다.

즉 무엇이 최소한의 개인정보 기재인가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민사·가사재판서 작성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208조·가사소송법 제39조에는 각 주민등록번호, 주소의 기재에 대하여 정확한 언급이 되어 있지 않고, 다만 형사재판서 작성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40조에는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성명, 연령, 직업과 주거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다섯째, 개인정보를 최소한으로 기재하는 것이 장차 예정된 1·2심 판결문 공개 과정에서도 많은 장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재판서에 나와 있는 개인정보를 지우고 도형으로 대체하기 위하여 많은 인력과 시간 그리고 혈세가 들어갈 것인바, 미리 어느 정도 불필요한 개인정보 기재를 줄여놓으면, 재판서 공개 과정에서 재판서에 나와 있는 개인정보를 지우고 도형으로 대체하는 데 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완전히 제거하였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도 예상할 수 있는바, 그 일례로 당사자와 피고인의 특정이 되지 않는 경우, 법원, 후속절차의 관계자와 이해관계인 등에게 실무적 혼란을 줄 수도 있고, 재판서의 기록으로서의 보존적 가치, 문헌적 가치가 감소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문제도 보완하면서 개인정보보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의 방법을 제안해 본다. 첫째, 주민등록번호를 적을 때는 ‘751021-1’, ‘451009-2’와 같이 최소한으로 기재하고, 둘째, 주소 역시 마지막 번지수를 지우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 강남구 논현동 에이아파트’와 같이 기재하는 재판서 작성 요령을 제안해 본다. 이 정도 개인정보의 공개이면 재판서가 스토킹, 피싱 등의 범행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더불어 이러한 작은 시도와 배려가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 고양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대법원은 「법원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규칙」을 제정하여 2011년 10월 26일부터 시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이후 위 규칙에 따른 「예규」가 제정되어 시행될 것인바, 이 예규에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보호의 헌법적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길 바란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법률신문(2012. 1. 26.), 블로그(2012. 2. 22.)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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