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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세탁소·디지털장의사


어떤 기자가 '잊혀질 권리'에 관한 기사를 올렸더니, 데스크로부터 어법에 맞게끔 '잊힐 권리'라고 고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용어야 어찌되었든, 국민들의 이 권리에 대한 요구는 엄청나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는 대학생들의 81%가 이 권리의 도입에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사망 이후의 온라인 게시글을 관리하는 디지털장의사, 사망 이전의 게시글도 관리해 주는 디지털세탁소가 우리나라에도 성업 중이다.

선진국의 레퓨테이션닷컴, 리무브유어네임 등의 업체에 이어, 우리나라의 산타크루즈, 맥신코리아 등의 업체도 등장하여 고액의 수임료를 받고 연예인, 기업, 정치인뿐만 아니라 신혼부부, 취업 준비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불쾌한 게시글을 관리해 주고 있다.

단순히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는 작업도 있지만, '밀어내기'라 하여 좋은 게시글을 올려 불쾌한 게시글을 밑으로 내리는 작업도 하고 있다.

인간생활에서 기억만큼 중요한 게 바로 망각이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한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의 뇌에 기억되어 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이런 망각 때문에 어제를 잊고 내일의 새로운 출발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기억만 있고 망각은 없다. 그래서 불편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기억과 망각이 공존하는 인터넷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 문제는 규범적으로 어떻게 이러한 세상의 실현을 지원하는가이다. 망각의 한계가 있다면 바로 기록이다. 여기서 기록이란 역사일수도 있고, 공적인 사건일수도 있고, 자유로운 표현일 수도 있다. 기록되지 않은 세상은 망각되지 않은 세상보다 더 위험하다. 법이 하여야 하는 역할이 바로 이 한계 설정이다.

인터넷세탁소·인터넷장의사의 성업을 보면서, 잊혀질 권리가 지금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지불능력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사이에 불평등한 인터넷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보편적인 권리 도입이 그 해결책이 아닐까.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법률신문(2013. 11. 25.)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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