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제기
<출처 : 연합뉴스TV 2017. 2. 25.자>
故 천경자 화백의 위작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은 2017년 4월부터 ‘미인도’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천경자 화백의 유족들은 위작인 미인도를 공개하는 것은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의 저작자부정표시죄 또는 형법 제308조의 사자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여기서는 과연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 공개가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의 저작자부정표시죄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저작자부정표시죄의 구성요건 및 쟁점 정리
우선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의 저작자부정표시죄의 구성요건은 아래와 같으며, 친고죄 아닌 비친고죄로 분류되고 있다(반의사불벌죄 아님).
저작권법 제137조(벌칙)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
제140조(고소) 이 장의 죄에 대한 공소는 고소가 있어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제136조제2항제2호 및 제3호의2부터 제3호의7까지, 제137조제1항제1호부터 제4호까지, 제6호 및 제7호와 제138조제5호의 경우
저작자부정표시죄는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ㆍ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할 때 성립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저작자의 의사에 반하여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하고 저작자의 저작물을 공표하면 이 죄에 해당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사건에서 천경자 화백의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천경자 화백의 의사에 반하여 천경자 화백의 실명이 표시된 미인도를 공표하였다고 주장하는 바, 관련하여 법적 쟁점은 1) 저작자부정표시죄의 보호법익이 저작자 보호에 있는 것인지 여부, 2) ‘공표’가 최초의 공개에 한정되는지 여부, 3) 저작자부정표시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표시와 공표를 모두 갖추어야 하는지 여부이다.
3. 저작자부정표시죄의 보호법익이 저작자 보호에 있는 것인지 여부
먼저 보호법익에 대하여 살펴보면, 과거 ‘표지갈이’ 사건에서도 이 죄가 문제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사건과는 사안이 조금 다르다.
표지갈이 사건은 실제로 저작을 하지 않은 교수가 즉 저작자 아닌 교수가 스스로 교재에 저작자로 표시하여 공표한 경우이고, 이번 사건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저작자 아닌 천경자 화백을 저작자로 표시하여 공표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저작자부정표시죄의 보호법익은 ‘저작자의 인격적 이익 보호’에 있고, 이에 덧붙여 ‘사회 일반의 신용’ 역시 보호법익에 속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따라서 이 법조항은 원칙적으로 저작물에 표시되지 않은 ‘저작자(진정 저작자)’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도입된 조항이지, 저작물에 표시된 ‘저작자 아닌 자(명의 저작자)’를 보호하는 조항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표지갈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명백하게 실제 저작자였고, 실제 저작자는 교재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표시되어 있지 않는 사람(진정 저작자)이 표시된 사람(명의 저작자)에 의하여 저작인격권 중 하나인 공표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가해자가 명의 저작자이고 피해자가 실제 저작자인 셈이다.
하지만 미인도의 위작을 주장하는 천경자 화백 유족의 주장에 따르면, 미인도의 저작자는 권춘식이고 천경자 화백은 단지 권춘식의 저작물에 잘못 표시되어 있는 사람일 뿐이다. 입법취지상 저작자부정표시죄의 보호대상은 저작자인 권춘식인바, 국립현대미술관 사건에서 저작자부정표시죄를 주장하게 되면 유족의 원래 의도에 반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교재에 표시되지 않은 진정 저작자가 피해자인 표지갈이 사건과 비교하여, 피해자를 표시된 자로 주장하는 천경자 화백 유족의 주장은 구조적으로 표지갈이 사건과 분명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저작자부정표시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과 법적인 우려가 생긴다. 국립현대미술관 사건에서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의 저작자부정표시죄의 적용을 주장하게 되면, 오히려 천경자 화백 유족이 권춘식의 보호를 주장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4. ‘공표’가 최초의 공개에 한정하는지 여부
‘공표’ 부분도 문제이다. 표지갈이 사건에서 검찰은 공표를 최초의 공개로 한정하지 않고 제2의 공개, 제3의 공개도 모두 포함된다고 해석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공표는 최초의 공개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정부지방법원 역시 표지갈이 항소심 사건에서 공표를 검찰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이 문제는 대법원에 가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공표를 최초의 공개로 한정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인도 공개는 공표에 해당하지 않아 저작자부정표시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검찰과 의정부지방법원과 같이 해석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공표는 일응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5. 표시와 공표를 모두 갖추어야 하는지 여부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의 문언상, 저작자부정표시죄의 주체는 표시와 공표를 모두 행한 자만 해당하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공표에는 관여했을지언정 저작자 표시에 관여하지 않은 국립현대미술관은 비록 미인도 공개를 하더라도 아예 이 죄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6. 결론
결론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하여 저작자부정표시죄가 성립하지 않고, 권춘식 역시 도화위조죄 성립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저작자부정표시죄가 성립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블로그(2017. 2. 28.)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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