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고발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인 ‘사망여우 TV’에는 최근 ‘선 넘네, 방송국 놈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시됐다.
이 영상이 다룬 이슈는 이른바 ‘연계편성’의 문제점이다. 연계편성이란 지상파나 종편의 건강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특정 상품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이와 동시에 동일 시간대 TV 홈쇼핑 채널에서는 동일 상품에 대한 판매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연계편성이 ‘방송판 뒷광고’로 불리는 이유
주로 건강기능성 식품 등이 연계편성 이슈와 관련해 문제가 된다. 예컨대, 가르시니아의 다이어트 효능에 관한 건강정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채널을 돌리면 가르시니아가 함유된 다이어트 보조제가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되고 있는 식이다.
건강정보 프로그램에서 다이어트 보조제 판매 업체의 이름이 노출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광고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이를 방송판 ‘뒷광고’라 비꼬기도 한다. 사망여우가 이러한 연계편성의 문제점을 지적한 유튜브 영상은 삽시간에 조회수 160만회를 기록했다.
연계편성의 문제점을 이해하려면 지상파(종편), 홈쇼핑 업체, 납품업체의 삼면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연계편성이 이뤄지는 전형적인 구조는 홈쇼핑에 자사 상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업체가 지상파(종편)의 교양 프로그램 제작비 등을 협찬하고, 지상파(종편)에서는 해당 업체가 다루는 상품을 특정 일시에 방영한다. 홈쇼핑 업체는 해당 방영 일시에 맞춰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납품 업체와 홈쇼핑 채널은 상품 매출이 증가하고, 지상파(종편)는 협찬금을 받기 때문에 서로 나쁠 것이 없다. 이들의 커넥션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로지, 기능성 식품의 효능을 과신하고 충동 구매를 하는 소비자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상식인으로서는 당연한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뒷광고는 불법이라는데, 연계편성은 ‘합법’일까?
현행법에서는 법적 제재 근거는 부족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행 방송법으로는 연계편성을 제재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연계편성의 문제점은 ‘협찬’이라는 제도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으므로 이를 살펴본다.
현행 방송법은 협찬의 개념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단지 하위 행정규칙에서 “방송프로그램제작자가 방송제작에 관여하지 않는 자로부터 방송프로그램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받는 것”이라고 협찬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협찬고지 등에 관한 규칙 제2조 제1호).
세상 일에 공짜가 없듯 프로그램 제작을 협찬한 협찬주는 자기의 상호명을 방송을 통해 노출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처럼 방송을 통해 협찬주 명칭이나 상호를 고지하는 것을 ‘협찬고지’라고 한다. 그런데 현행 방송법이나, 협찬고지 규칙에서는 협찬고지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법 문언 상으로는 협찬금을 받고 협찬고지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협찬계약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연계편성에 연루된 어떤 업체도 협찬금을 지급했는데, 협찬주명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방송사에 따져 묻지 않는다.
어차피 업체 입장에서는 자신들 관련 상품을 다루는 교양 프로그램 말미에 협찬주명이 고지돼 시청자들로부터 연계편성에 대한 미심쩍은 시선을 받느니, 홈쇼핑을 통해 매출을 얻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방송판 뒷광고인 연계편성 문제의 본질은 이처럼 고지되지 않은 협찬과 이를 둘러싼 방송사업자간 커넥션에 있다. 업계에서는 종편(지상파)협찬을 조건으로 내거는 홈쇼핑 업체가 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협찬고지 의무화하는 방송법 개정안 계류 중
소비자들의 그릇된 인식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다. 그 원인의 중심에 제도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소관부서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연계편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2018년 무렵부터, 협찬 정의 규정의 상향입법, 일부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협찬고지를 의무화하는 등의 대안을 내놓고 발빠르게 움직인 바 있다.
하지만 방송편성의 자유라는 대명제를 주장하는 사업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기에, 법 개정 논의는 이제까지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이 작년 10월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을 거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점이다.
건강에 관한 교양 프로그램과, 건강기능식품의 수요자 가운데에는 노년층이 많다. 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에라도 교양 프로그램의 외피를 두른 광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 큰 해악이 발생하기 전에, 조속히 연계편성을 규제하는 입법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다.
* 법무법인 민후 허준범 변호사 작성, 이데일리(2021. 2. 7.)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