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그대와 설희. 여러분이 보기에는 법적인 표절인가요 아닌가요?
여러분의 판단을 돕기 위한 마지막 Tip 드립니다. 저작권 논란에서 가장 어려운 1단계,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별.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2가지 원칙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그 속에 숨어있는 저작권의 본질을 함께 살펴봅시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구별! 아래 2가지 원칙을 기억하세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 expression dichotomy)
저작물을 아이디어와 표현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 표현, 특히 창작성을 가진 표현만이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이는 미국 판례에서 발달한 원칙이지만, 우리나라 법원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고,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가장 기초적인 법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합체(merge)
저작물을 아이디어와 표현으로 나누었지만, 아이디어와 표현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이를 도저히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특정한 경우에는 그 부분만큼은 표현이라 하더라도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원칙입니다. 이러한 표현 부분을 저작권으로 보호하게 되면, 사실상 그와 합체되어 있는 아이디어까지 보호하는 결과가 발생하므로, 아이디어는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원칙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해당 아이디어가 오직 그 표현방법 외에는 달리 효과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경우, 해당 아이디어를 표현할 때는 으레 특정한 표현이 전형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그 표현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억울해요! 저작권은 대체 왜 나의 아이디어를 보호하지 않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잠깐! 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떠오르지 않으세요? 대체 왜 아이디어를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오히려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인데, 왜 그 고통은 인정해주지 않는 것인지, 억울하지 않나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저작권” 나아가 “지적재산권”이라는 권리의 본질을 마주하게 됩니다. 저작권, 특허권, 디자인권, 상표권 등 현대법학은 수많은 지적재산권을 고안하고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지적재산권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통적인 하나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지요. 그 단 하나의 사상은 바로, “창작을 통한 인간생활의 풍요”입니다. (여기서 풍요는 정신적·물질적 풍요를 모두 가리킵니다)
“창작을 통한 인간생활의 풍요”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여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의 지나친 독점을 방지하여 또다른 창작을 촉진시키며 이용자들이 그 창작물로 인한 풍요를 적절히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1조도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지요.
저작권이 표현만을 보호하고 아이디어는 보호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디어까지 보호하게 된다면, 같은 소재, 같은 설정을 통한 다른 작품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작품이 스르르 사라지는 장면이 보이시나요?
매일 마주치는 교복입은 평범한 소녀가 위급한 순간마다 정의의 사도가 되어 세상의 악을 응징하고 다니는 설정, 우리는 “세일러문”에서도 보았고, “천사소녀 네티”에서도 보았으며, “웨딩피치”에서도 보았지요. 그리고 그 소녀들에게는 반드시 그 위급한 순간을 함께 하는 멋진 남자주인공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녀들 대부분은 마법을 쓰기 위해선 막대기 비슷한 것을 휘둘러야만 합니다. 위급한 순간에 정말 예쁘기만 할 뿐 아무리 보아도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의상으로 갈아입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공통적입니다. 그리고 멋진 남자주인공과는 필연적인 사랑의 결실을 맺어야 하지요. (소녀들이 너무 많으면 남자주인공을 2명으로 늘려주는 약간의 센스가 발휘되기도 합니다) 사랑의 과정에서는 반드시 갈등도 발생하고, 특히 그 갈등 중에는 남자주인공이 그녀들의 위대한 사명을 방해할 수 있는 존재로서 등장하는 장면이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턱시도가면도, 셜록스도, 케빈도 이 설정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아, 한가지 빠뜨렸네요. 그녀들의 엄마는 정말 특별한 태생들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세일러문과 천사소녀 네티와 웨딩피치는 서로 표절이 아닙니다.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아이디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세 작품을 모두 향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작권은 지적재산권 중에서도 참 특별한 권리입니다. 특허나 상표, 디자인과 달리, 따로 등록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저작물의 탄생과 동시에 인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인 권리인 지적재산권 중에서 가장 자연적 권리에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작권을 바라볼 때에는 더욱 자연스러운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마음가짐. 창작자와 창작자 사이의 배려, 창작자와 이용자 사이의 배려. 나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의 조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의 조화.
저작권이 우리 모두의 풍요로움을 보호하는 권리가 되는 그날이 오기를, 별그대와 설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웃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최주선 변호사 작성, 블로그(2013. 12. 25.)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