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업비밀의 비공지성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할 것, 즉 비공지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비공지성이란 그 정보가 간행물 등의 매체에 실리는 등 불특정 다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그 정보를 통상 입수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대법원 2004. 9. 23. 선고 2002다60610 판결 참조).
2. 역설계와 영업비밀 인정여부
그렇다면 특정 정보 자체가 아닌, 그로 인해 제작된 제품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여 특정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정보의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서도 이를 통상 입수할 수 있으므로 비공지성이 상실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즉 역설계가 가능하다면 그 정보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정보로서 영업비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인가?
이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단은 아래와 같다.
영업비밀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기타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하고, 영업비밀의 보유자인 회사가 직원들에게 비밀유지의 의무를 부과하는 등 기술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상, 역설계가 가능하고 그에 의하여 기술정보의 획득이 가능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그 기술정보를 영업비밀로 보는 데에 지장이 있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6. 11. 26. 선고 96다31574 판결,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대법원 1999. 3. 12. 선고 98도4704 판결 등).
즉 역설계가 가능하다는 사정만으로 비공지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은 침해행위자가 그러한 침해행위에 의하여 공정한 경쟁자보다 ‘유리한 출발(headstart)’ 내지 ‘시간절약(lead time)’이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이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로 인해 유리한 출발 내지 시간절약의 부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면, 설령 역설계가 가능한 정보라 하더라도 영업비밀로서의 비공지성은 상실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설계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거나 많은 비용 혹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 그 영업비밀에 대한 침해행위는 공정한 경쟁자보다 ‘유리한 출발(headstart)’ 내지 ‘시간절약(lead time)’이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결과를 발생시킴은 다름없으므로, 비공지성이 인정되어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미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적법한 역설계 과정을 통해 특정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비공지의 영업비밀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3. 역설계와 영업비밀의 보호범위
역설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정보가 영업비밀로 인정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역설계가 가능하다는 사정은 영업비밀의 보호범위를 판단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대법원은,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금지시키는 것은 침해행위자가 그러한 침해행위에 의하여 공정한 경쟁자보다 ‘유리한 출발(headstart)’ 내지 ‘시간절약(lead time)’이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영업비밀 보유자로 하여금 그러한 침해가 없었더라면 원래 있었을 위치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이므로, 영업비밀 침해행위의 금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함에 필요한 시간적 범위 내에서 기술의 급속한 발달상황 및 변론에 나타난 침해행위자의 인적·물적 시설 등을 고려하여 침해행위자나 다른 공정한 경쟁자가 독자적인 개발이나 역설계와 같은 합법적인 방법에 의하여 그 영업비밀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상당한 기간 동안으로 제한(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4. 보호방법의 결정
살펴본 바와 같이 제품의 역설계를 통해 손쉽게 특정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경우, 그 정보는 영업비밀로써 보호되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 특허제도를 통해 기술을 보호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계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여 장기간 동안 그 정보가 공개되기 어려운 경우에는, 보호기간의 제한이 없는 영업비밀로써 기술을 보호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기술정보를 보호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역설계의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보호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영업비밀로 인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 역설계 항변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작성, 이데일리(2018. 10. 19.)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