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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 유출과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의 면책


영업비밀이란 통상 기업이나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가치 있는 경영상 또는 기술상 정보를 의미하는데, 우리나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은 영업비밀의 부정한 취득이나 사용 등을 영업비밀 침해 행위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하여 형사적으로 그리고 민사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나 기관의 직원이 기업이나 기관의 불법적인 행위를 외부에 알리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공개하는 경우에도 이를 제재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공익을 해치면서 위법을 행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이익까지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EU나 미국은 면책 규정을 두어 공익 목적으로 기업이나 기관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 이른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를 각종 제재로부터 면책하고 있는바, 이러한 규정을 내부고발자 규정이라고 칭하고 있다. 기업이나 기관의 이익보다는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 부담의 관철, 표현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각 나라마다 그 사회적 상황에 따라 내부고발자 규정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EU,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실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EU는 2016. 7.부터 효력이 발생한 EU 영업비밀 지침(DIRECTIVE 2016/943)의 제5조 제b항에서 내부고발자 규정을 두어 내부고발자의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하여는 면책시키고 있다.

EU 영업비밀 지침 제5조 제b항에 의하면 영업비밀 유출이 ‘남용행위ㆍ범법행위ㆍ불법행위를 공개하는 상황’에서 ‘일반의 공익 보호 목적’으로 행해져야만 면책되는바, ‘남용행위ㆍ범법행위ㆍ불법행위를 공개하는 상황’이라는 상황적 요건과 ‘일반의 공익 보호 목적’이라는 목적적 요건이 구비되었는지를 판단해야 면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제5조 제b항에 해당하면 EU 영업비밀 지침의 각종 조치나 절차, 배상에 관한 규정의 적용이 배제된다. 제5조 제b항에 해당한다는 입증책임은 내부고발자가 부담한다.

미국의 내부고발자 규정은 EU보다는 그 적용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2016. 5. 시행된 미국의 영업비밀방어법(DTSA, Defend Trade Secrets Act) 제7조에 따르면, 내부고발자의 영업비밀 유출이 ‘정부기관이나 재판’에서 노출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책임이 면책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절차적으로 기업이나 기관은 근로자에게 이러한 면책 내용을 통지하거나 그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고 만일 사전에 계약 체결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업이나 기관은 소송비용 등에 있어서 불이익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규정 역시 EU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은 내부고발자의 면책을 까다로운 실체적ㆍ절차적 조건 하에서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U 영업비밀 지침이나 미국 DTSA에 명시적으로 내부고발자 규정이 존재하는 것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는 이러한 내부고발자 규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업비밀에 관한 법령이 EU나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조, 제14조 등에 의하면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및 공정한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공익신고에 대하여는 그 신고자의 처벌을 감면하고 있어 내부고발자 규정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조, 제14조 등의 실제 적용 과정에서 보면, EU 영업비밀 지침 제5조 제b항이나 미국 DTSA 제7조와 동일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영업비밀 법령에도 EU나 미국과 같은 ‘내부고발자’ 규정의 신설을 고려해 봄이 타당해 보인다. 불법을 행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위법행위에 관한 자료를 법적으로 보호해 줄 필요성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자동차는 직원 김모씨가 현대ㆍ기아차의 리콜 은폐 의혹에 관한 자료를 무단으로 빼내 외부에 유출하고 이 자료들을 반환하라는 요구에 따르지 않은 것이 명백한 사규 위반이라고 판단하여 해고를 결정한 적이 있는바, 만일 EU 영업비밀 지침 제5조 제b항과 유사한 조항이 우리나라 영업비밀 법령에 입법적으로 완비되어 있었다면 아마 다른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디지털데일리(2017. 2. 9.), 리걸인사이트(2017. 2. 13.)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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