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2006년도에 미국 민사소송 절차에 도입된 전자증거에 대한 증거개시제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제도. 이 제도로 인하여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6년, 한국의 S 전자는 반도체 가격담합에 관한 재판 중에 일부 중요한 전자문서를 고의적으로 누락했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제재를 당한 적이 있고, 2011년, 한국의 K 산업은 미국 기업과의 영업비밀 소송 중에 이메일 증거를 고의적으로 폐기한 다음 이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 9억 2천만달러(한화 약 1조 445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배상금 제재를 부담하여야만 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듯, 미국에서는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전자증거개시에 관한 이디스커버리 이슈에서 지면 결국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퀄컴(Qualcomm)의 예인데, 2008년경, 퀄컴의 변호사는 브로드컴(Broadcom)과의 특허소송 중에, 브로드컴이 디스커버리 과정에서 요구했던 수만개의 이메일을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분노한 법원으로부터 퀄컴의 비디오 관련 특허에 대한 무효선언을 받았고, 약 850만달러(한화 약 90억원)의 소송비용 지불 명령을 받았으며, 법원이 보낸 징계처분 요구가 변호사협회에 도달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호주 등도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앞 다투어 입법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준비도 하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전자증거의 범람 및 관리상의 어려움 때문에 전세계의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사법기관에서도 이디스커버리 도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으며, 우리나라 밖의 글로벌 환경은 우리 기업과 우리 법조에 변화와 적응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디스커버리 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믿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디스커버리 제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디스커버리의 등장 : Zubulake case
미국에서 이디스커버리 절차가 민사소송에 도입된 것은 2006년이다. 1938년 종이증거에 대한 증거개시제도로서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컴퓨터의 보급 확대와 정보통신기술ㆍ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증거자료의 일대변화가 발생하였기에, 종이문서를 대상으로 했던 디스커버리의 범위를 넓혀, 전자증거에 대한 이디스커버리까지 증거개시의 대상으로 포함시킨 것이었다.
소송적으로 이디스커버리 제도의 탄생을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판례가 하나 있는데, 바로Zubulake 판례이다.
2001년 8월경, 여성고용자였던 Zubulake는 그녀의 근무지인 UBS Warburg를 상대로 성차별 및 보복행위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이 판결에서 법원은 전자적 자료도 문서의 범위에 포함되는 데이터 편집물(Data Compilation)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증거개시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나아가 법원은 삭제된 자료에 대하여도 소송과 관련성 있는 경우는 증거개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 이후 전자적 자료에 대한 별도의 디스커버리 제도, 즉 이디스커버리 제도의 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어 결국 2006년 12월경 연방민사소송규칙(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FRCP)을 개정하여 이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개정된 연방민사소송규칙은 이디스커버리 제도를 규정하면서, 첫째, 증거개시 대상인 전자적 자료(Electronical Stored Information, ESI)는 기존의 종이문서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며, 둘째, 각 당사자는 전자적 자료의 보존 의무를 부담하고, 셋째, 특권면책사유가 존재하는 전자적 자료에 대하여는 증거개시의무가 면제되며, 넷째, 전자적 자료는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와 그렇지 않은 자료로 나누어 이원적으로 취급되어야 하고, 다섯째, 증거의 악의적ㆍ고의적 훼손에 대하여는 제재를 받아야 하지만, 선의인 경우에는 법원의 제재를 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된 연방민사소송규칙 이후 각 주는 그 주의 특수한 상황이나 사법체계에 맞추어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하였으며, 값비싼 이디스커버리 비용이나 고의의 증거훼손에 대한 무기력한 대처의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사법제도의 한 축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글은 필자가 『2013년도 2/4분기 국제 IP분쟁 이슈보고서(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에 기고한 내용을 축약ㆍ수정한 것임, 위 보고서는 http://www.ip-navi.or.kr/에서 볼 수 있음>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디지털데일리(2013. 8. 8.), 블로그(2013. 8. 29.)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