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로 인한 사고는 2가지 요인으로 발생한다. 첫번째가 운전자의 과실(주의의무 위반)로 인한 것이고, 두번째가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에 대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으로 규율하고 있고, 후자에 대하여는 제조물책임법으로 규율하고 있다.
비율적으로 보면, 운전자의 과실은 자동차 결함보다 월등하게 그 비율이 높다. 따라서 현재 제조물 책임은 운전자 과실보다는 그다지 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SW, 알고리즘, 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달 및 이를 활용한 자율주행시스템을 탑재한 자율주행자동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책임 구조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가장 기본적인 취지는 운전자가 하는 역할을 줄이고 그 일을 자율주행시스템이 대신 해 줌으로써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역할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면서 사고는 급격하게 줄어들겠지만, 줄어든 상태의 사고 원인은 현재와 달리 운전자에 말미암은 것은 아니라 자동차 결함에 기인한 것이 주가 될 것이다.
사고의 주된 원인이 달라짐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책임 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게 된다.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중운행 규정(안)은 SAE 3레벨(Conditional Automation)의 경우, 운전자와 제조사가 같이 책임을 부담하지만, SAE 4레벨(High Automation) 또는 5레벨(Full Automation)의 경우, 제조사만이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자율운행 정도가 높아질수록, 제조물 책임의 비중이 커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제조물 책임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우여곡절 끝에 제조물책임법이 제정되고 최근 징벌적 3배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급발진 소송이나 담배 소송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피해자 보호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물의 범위가 현실적이지 못한 점, 손해배상 범위 획정의 어려움, 불완전한 입증책임의 전환 등의 이유 때문이다. 특히 SW가 제조물에 포함되지 않는 점은 다가오는 지능정보 사회에 큰 미비점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책임이나 피해자 구제에 대하여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정보 기기의 비중이나 역할이 가정이나 회사에서 보다 더 중요해지고 그 의존도도 커지고 있는 현재와 장래에 있어, 제조물 결함에 대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피해 구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숙제가 됐다.
한편 피해자 구제를 고려할 때 같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적절한 면책 범위의 설정이다. 왜냐하면 자칫 지나치고 편향적인 제조물 책임 범위는 기업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사의 책임 범위를 줄이는 개념으로서 자율주행시스템이 적절히 동작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운영설계도메인(Operational Design Domain, ODD) 및 의도된 사용(intended use)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바, 이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결론으로 기술의 발달로 불가피하게 변화하는 책임의 구조를 고려할 때, 다가올 미래 환경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나라 제조물책임법에 대한 미비점을 보완하되, 혁신을 저해하지 않은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도 같이 유의해야 할 것이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IT조선(2017. 12. 1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