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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의 묵시적 승계는 엄격하게 인정돼야


기술 유출에는 절취도 있지만, 납품관계를 이용해서 특허나 디자인을 빼앗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술절취의 경우 권리자의 보호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신속한 수사나 압수수색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보호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납품관계를 이용해서 기술을 빼가는 경우는 아직도 사각지대이고, 수사적으로도 구제가 어렵고 사법적으로도 구제가 쉽지 않게 되어 있다.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 전형적인 사례를 예를 들어서 본다. 예컨대 납품업체 A가 특정 제품을 발명하고 그 제품을 다른 업체 B에게 공급하려고 하는데, B는 납품을 전제로 특허 또는 디자인을 받을 권리를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하면서 그렇게 해 주면 잘 해주겠다 또는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어떻게 잘 해줄지 또는 그 일정한 대가에 대해서는 '일부러' 구체적으로 특정을 하지 않는다. A는 B의 말을 거절할 수 없어 출원인을 B 명의로 해 준다. 어떤 경우는 발명자 또는 창작자도 B로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납품관계이기 때문에 A는 감히 B에게 특허 또는 디자인을 받을 권리에 대한 승계계약서 작성도 요구하지 못한다. 실제 발명이나 창작은 A가 했기 때문에 출원 과정에서 의견제출통지에 대한 대응도 A가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A는 승계계약서는 커녕 사람을 믿다 보니 녹취도 없다. 녹취가 있다 해도 대가가 구체적ㆍ확정적이지 않다.

나중에 B가 약속을 어기고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 A는 모인출원을 주장하면서 B 명의의 특허 또는 디자인이 무효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 100% B는 A로부터 묵시적으로 승계를 받았기 때문에 B 명의의 특허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즉 명시적으로 승계계약서를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A가 B를 출원인 명의로 하는 데 동의해 주었고, 의견제출통지서 대응에도 협력해 주었기 때문에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를 B가 승계받는데 묵시적으로 동의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 A는 패소를 면하지 못한다. B의 묵시적 승계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를 이전해 주면서 그 대가를 단 한푼도 받지 못했는데, '묵시적 승계'라는 괴물 때문에 A는 강제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B에게 묵시적 증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경향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상식적으로 따져서 사업적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무상으로 특허나 디자인을 이전해 주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묵시적 승계'라는 괴물만 나오면 이런 상식이 깨진다.

우리 대법원은 2012. 12. 27. 선고 2011다67705,67712 판결을 통해서 특허를 받을 권리의 묵시적 승계를 인정한 적이 있는데, 그 사건에서 대법원이 묵시적 승계를 인정한 이유는 발명자나 창작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이 묵시적 승계를 예외적으로 인정한 취지와 달리, 이후 특허심판원이나 하급심에서는 발명자나 창작자의 권리를 앗아가는 데 묵시적 승계가 이용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 역시 재산적 권리인바, 상거래관계에서 재산적 권리를 무상으로 이전해 준다는 것은 경험칙에 반한다. 그러나 묵시적 승계라는 괴물이 나오는 순간 경험칙에 반하더라도 무상 이전 주장이 받아들여진다.

A의 의사를 보건대,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를 결코 무상으로 이전해 준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의 이전과 대가의 지급은 불가분적 관계로서 하나의 계약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묵시적 승계라는 괴물은 불가분적 관계인 하나의 계약을 자의적으로 쪼개어, 이전에 대해서는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러나 대가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식의 법 적용을 하는바, 이렇게 계약을 맘대로 쪼개는 것이 타당한가? 부동산이라면 과연 이렇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면, 묵시적 승계 법리의 무심한 적용의 기저에는 기술 천시 사상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묵시적 승계라는 것은 계약이고, 따라서 대립되는 의사표시가 합치될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게 대법원의 태도이다. 그리고 묵시적 합의를 인정할 때는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의 묵시적 승계를 인정할 때,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재산적 권리를 넘겨주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과연 내 재산이면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재산적 권리를 넘겨주는데 있어 누가 동의하겠는가? 특허나 디자인을 받을 권리의 '묵시적 승계'는 아무리 엄격하게 인정되어도, 아무리 신중하게 인정되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전자신문(2021. 10. 17.)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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