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105482 판결
[사실관계]
원고는 전기통신사업자인 피고 네이버(이하 ‘피고’)의 회원으로서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의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2010. 3. 4.경 김연아 선수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피하는 듯한 장면을 편집한 사진을 가입한 카페의 유머게시판에 올렸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10. 3. 5. 원고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였고, 이에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2010. 3. 8. 피고에게 용의자 수사 목적으로 원고의 인적 사항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피고는 이틀 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근거로 종로경찰서장에게 ‘네이버 아이디, 성명, 주민번호, 이메일 주소, 휴대폰 번호, 네이버 가입일자’ 등의 인적사항을 제공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가 수사기관에 원고의 인적사항을 제공한 행위는 원고의 개인정보를 충실히 보호해야 할 의무에 위배하여 원고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익명표현의 자유를 위법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한편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인 피고에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한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개별 사안에 따라 제공 여부 등을 적절히 심사하여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할 의무가 있고, 구체적으로는 침해되는 법익 상호간의 이익 형량을 통한 위법성의 정도, 사안의 중대성과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 여부 및 어느 범위까지의 개인정보를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세부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으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전제 하에,
이 사건 게시물은 공적 인물인 장관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표현 대상과 내용, 표현 방법, 원고가 위 게시물을 게재한 동기와 경위 등에 비추어 위 게시물이 장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고는 위 게시물을 직접 생산하거나 편집한 바 없이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것을 이 사건 카페의 유머게시판에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여 위 게시물로 인한 법익침해의 위험성이 원고의 개인정보 보호에 따른 이익보다 훨씬 중대한 것이라거나 수사기관에게 개인정보를 급박하게 제공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쟁점]
o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컴퓨터시스템이나 통신망의 정당한 이용자를 식별하기 위한 이용자 식별부호인 아이디, 이용자의 가입 또는 해지 일자 등 통신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받은 때에 이에 응할 수 있다’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구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 제3항)이 피고에게 통신자료 제공 여부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를 부여했는지 여부
o 피고가 종로경찰서장에게 원고의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 위법한지 여부
[해설]
여러 개인정보 관련 법령에는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근거 규정이 존재하는데, 그 근거 규정 중 몇 개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개인정보처리자는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7호).
개인정보처리자는 법원의 재판업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개인정보를 목적 외의 용도로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8호).
신용정보회사 등은 조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질문·검사 또는 조사를 위하여 관할 관서의 장이 서면으로 요구하거나 조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출의무가 있는 과세자료의 제공을 요구함에 따라 제공하는 경우에 개인신용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신용정보법 제32조 제6항 제7호).
감사원은 이 법에 따른 회계검사와 감사대상 기관인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를 위하여 필요하면 다른 법률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인적 사항을 적은 문서(「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전자문서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 의하여 금융기관의 특정 점포에 금융거래의 내용에 관한 정보 또는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해당 금융기관에 종사하는 자는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감사원법 제27조 제2항).
감사원법 제27조 제2항은 제공의 근거 규정이지만 제공하는 측이 제공을 거부하지 못하는 반면, 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7호ㆍ제8호나 신용정보법 제32조 제6항 제7호는 ‘제공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어 제공하는 측이 제공 요청에 대하여 제공할 수도 있고 제공을 거부할 수도 있어 보인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 역시 ‘응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어 수사기관의 요청에 대하여 전기통신사업자는 응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포함하여, 위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관련 조문은 단순히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제공)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기에 이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2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입장은,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으면 의무규정이지만, ‘제공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조문은 제공하는 측의 제공권한에 대하여 규정한 것으로서,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면책조문이라는 입장이다. (권한 규정, 면책 규정)
즉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조문은 제공하는 측의 제공이 적법하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개인정보 제공에 대하여 책임이 없음을 명기하는 취지라는 것이다.
또는 형식적ㆍ절차적 요건을 갖추었는지 정도는 살펴보아야 한다는 전제에서 이를 갖추지 않은 경우 제공을 거절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제공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형식적 심사 규정)
두 번째 입장은, 개인정보 제공에 관한 조문이 ‘제공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지 않고 ‘제공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 이유는 제공하는 측에서 거절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결국 제공하는 측은 제공 여부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심사하여 만일 제공 요청이 부당하다면 이를 거절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심사의무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실질적 심사 의무 규정, 형량의무 규정)
여러 개인정보 제공 규정이 위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입장인지에 대하여는 개별적으로 판단할 사안으로 보이나, 동일한 형식의 법조문에 있어서는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입장이 타당한지에 대한 원칙적인 해석이 존재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두 번째 입장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입장을 바꾸어 첫 번째 입장으로 해석하였는바,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문언상 전기통신사업자는 응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지, 전기통신사업자가 개별 사안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 그 제공 여부 등을 실질적으로 심사하도록 정하고 있지 않다.
둘째, 현실적으로도 사법기관도 아닌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이익형량 등을 통하여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실질적인 심사를 요구하거나 기대하기 어렵다.
셋째, 법원의 허가나 영장이 필요한 통신비밀보호법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이나 ‘감청’, 송수신이 완료된 전기통신과 달리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법원의 허가나 영장 없이도 수사기관의 서면요청만으로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자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바, 이는 통신자료의 성격을 고려하고 수사상 신속과 다른 범죄의 예방 등을 위한 취지라 볼 수 있는데, 만일 전기통신사업자가 실질적으로 심사를 하게 되면 이는 그 입법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넷째, 전기통신사업자의 실질적 심사를 거치지 않고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범죄에 대한 신속한 대처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는 반면 제한되는 사익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다섯째, 수사기간이 그 제공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하여 일반적으로 그 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하여야 할 책임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없고, 수사기관의 남용에 대하여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아니라 해당 수사기관에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타당하다.
위 5가지 이유로, 대법원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위 규정에서 정한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심사하여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에게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제공하였다면,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이 통신자료의 제공 요청권한을 남용하여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로 인하여 해당 이용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나 익명표현의 자유 등이 위법하게 침해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본 사안에서 살피건대, 종로경찰서장이 그 권한을 남용하여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였다거나 그로 인하여 원고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찾을 수 없는바, 피고의 제공 행위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시를 정리하면, 1) 포털 등 전기통신사업자의 개인정보 제공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전기통신사업자의 실질적 심사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며, 2) 본 사안에서 피고가 실질적 심사를 하지 않고 종로경찰서장에게 통신자료를 제공했다고 하더라도 종료경찰서장의 권한 남용이 명백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의 의의]
위 대법원 판결은,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의 의미에 대하여 제공하는 측의 제공 여부 등에 대한 실질적 심사의무를 부정함으로써, 여러 개인정보 제공 관련 규정에 대한 해석의 기초를 마련했다.
*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 작성, 디지털데일리(2016. 9. 29.), 리걸인사이트(2016. 10. 26.)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