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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출원 된 등록상표의 효력(전원합의체 판결)


김갑동의 상표 A가 출원되어 등록되어 있다. 이을동은 이와 유사한 지정상품에 대하여 유사한 상표 A’를 출원하였는데, 거절되지 않고 그대로 등록되었다. 이을동은 자신이 출원한 A’ 상표가 유효하게 등록된 것을 믿고 5년 넘게 꾸준히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 A의 상표권자 김갑동이 이을동에게 A’ 상표의 사용중단과 손해배상을 요구하였다. 과연 이을동은 A 상표권자의 요구에 응해야 할까?

우리 상표법은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할 동일·유사한 상표에 대하여 다른 날에 둘 이상의 상표등록출원이 있는 경우에는 먼저 출원한 자만이 그 상표를 등록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여 먼저 출원한 자를 우선하는 선출원주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상표법 제35조). 따라서 이을동의 상표 A’는, 그보다 먼저 출원된 김갑동의 등록상표 A와 유사한 후출원 상표로서 처음부터 등록이 되어서는 안 되며, 거절결정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간과되어 결과적으로 등록에 이른 경우의 문제는 또 다르다. 후출원 된 상표라도 일단 등록이 되면, 무효심판에 의하여 무효로 확정되기 전까지는 유효한 등록상표이며, 무효심판이 확정되어야 비로소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상표법 제117조 제3항). 바꿔 말하면 무효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이을동의 A’ 상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특히 후출원 상표라는 이유로 무효를 주장하는 것에는 기간의 제한이 존재한다. 상표법은 후출원 상표의 등록일로부터 5년이 경과하면 제척기간 도과로 더 이상 그 사유를 무효의 원인으로 주장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상표법 제122조). 바꿔 말하면 후출원 상표라 하더라도 무효심판 청구 없이 5년 이상 등록된 상태가 유지되면 그 법적 상태를 유효하게 보겠다는 것인데, 일정 기간 형성된 법적 상태의 안정을 보호하겠다는 상표법의 결단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출원 등록상표권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또 어렵다. 상법의 규정에 따라 등록상표를 선점한 자는 그로 인한 이익을 적법하게 독점하여야 할 지위에 있다. 그러나 행정청이 처음부터 적법한 판단으로 후출원 상표의 등록을 거절하였다면 애초 발생하지도 않았을 분쟁임에도 그 점을 간과하여 등록에 이른 것도 탐탁지 않은 상황에, 우연히 그 등록일로부터 5년이 도과되어 이제는 독점의 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한다면, 충분히 불만을 가질 법 하다. 5년의 기간 동안 자신의 등록상표와 유사한 상표가 등록되어있는지 매번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불만이다. 법적 안정성만을 이유로 적법하게 등록상표를 선점한 상표권자에게 손해를 감수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다.

이 사안에 있어 김갑동의 A상표를 보호해야 하는지, 이을동의 A’상표를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결국 A의 상표권과 A’가 형성한 법적 상태의 안정이라는 두 가치 중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표법은 후출원 상표등록일로부터 5년 되는 날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균형을 도모하려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기존 판례를 변경하며 선출원 상표권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시를 한 바 있다(대법원 2021. 3. 18. 선고 2018다253444 전원합의체 판결). 위 판결은 "후출원 등록상표의 적극적 효력이 제한되어 후출원 등록상표에 대한 등록무효 심결의 확정 여부와 상관없이 선출원 등록상표권에 대한 침해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요컨대 후출원 등록상표의 상표권은 태생부터 그 사용할 권리(적극적 효력)가 제한된 것이라는 취지이다.

스스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표는 사실상 무의미한 상표라는 점에서, 위 대법원 판시가 5년의 제척기간을 두고 있는 상표법 제122조의 명문 규정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지기는 한다. 그러나 잘못된 행정행위로 인하여 억울하게 손해를 입게 된 적법한 상표권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앞선 사례에서 이을동은 김갑동의 요구에 따라 A’ 상표의 사용을 모두 중지하고 적정한 손해를 배상해 주어야 한다.

*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변호사 작성, 디지털데일리(2021. 4. 26.)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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